꽃을 주제로 한 짧은 시 모음(벚꽃, 아카시아, 라일락, 장미, 들꽃)

 

꽃이 피면, 또 꽃이 지고,
그 자리를 남겨두고 새로운 꽃이 다시 피어납니다.

 

꽃이 지는 이유는,
다시 피기 위한 길을 준비하는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.

 

 

 

꽃을 주제로 한 시 - 아카시아

 

◈ 아카시아 꽃 - 나태주

아카시아 꽃이 피면
그 향기는 바람을 타고
나를 지나친다

그 향기 속에
내가 살아온 모든 날들이
가득 담겨 있는 것 같다

아카시아 꽃은
그냥 피기만 하면 된다
아무 말 없이
그냥 그렇게

사랑은, 그리움은,
아카시아 꽃처럼 피고
또 지고, 또다시 피어나는 것이다

 

◈ 아카시아 꽃 - 김춘수

아카시아 꽃은 하얗다
하얗게 피어
하얗게 지는 꽃,  
그 속에 가슴 속 모든 기억을 담는다

그리운 이름,  
잊을 수 없는 그때의 나,  
모든 것이 아카시아 꽃처럼
흰 꽃잎 속에 묻혀 있다

오늘도 다시
아카시아 꽃이 피어난다
그 향기에 취해  
나는 다시 그날을 꿈꾸며
길을 떠난다

 

◈ 아카시아  - 유하

아카시아 꽃은
언제나 그 자리에 있다
내가 찾지 않아도
언제나 그 자리에

하얀 꽃잎은 바람에 흩어지고
그 향기는 다시 내게 돌아온다

그 꽃이 피고 질 때마다
내 마음도 함께 피고 지며
그리움은 더해만 간다

 

 

 

 

 

꽃을 주제로 한 시 - 벚꽃

◈ 벚 꽃 - 고은

벚꽃이 피면
이 세상은
잠시 멈추고
모든 것이
그 아름다움에 취한다

그러나 벚꽃은
긴 시간 피지 않는다
단 하루의 꿈처럼
한 순간 피고
한 순간 지고 말 것이다

그 짧은 순간을
우리는 가슴에 담고
다시 살아간다
벚꽃처럼

 

◈ 벚 꽃 - 정호승

벚꽃은 언제나
피고 나면
흩어진다

그 흩어진 꽃잎을
다시 모을 수 없듯
지나간 시간도
다시 돌아오지 않는다

그러나 벚꽃을 보고 있으면
그 순간을 잃어버린 듯한
슬픔 속에서도
어딘가 따뜻한 희망이
피어나는 것을 느낀다

 

◈ 벚 꽃 -  나태주

벚꽃이 피면
그것은 봄의 시작이지만
한편으로는 끝임을 알리는 것이다

벚꽃이 지고 나면
그 빈자리에
서서히 다른 꽃들이 피어난다

모든 꽃은
사라지기 전에 가장 아름답다
벚꽃은 그 아름다움을
마지막 순간까지 보여준다

 

 

 

 

 

꽃을 주제로 한 시 - 라일락

◈ 라일락 - 윤동주

라일락꽃이 피었을 때,  
그것은 내가 처음으로 사랑을 배운 순간이었다.  
흐드러지게 피어난 꽃들이  
햇살 속에서 반짝이며  
내 마음을 깨우고 있었다.

나는 고백할 수 없었다.  
그저 바라보는 것만으로도  
가슴이 저려왔고,  
라일락의 향기는  
내게 너무 달콤하고 아팠다.

라일락은 그렇게  
내 마음의 첫사랑이 되었다.  
그 꽃이 시들고 나면  
내 마음도 그만큼 깊어져 갔다.

 

◈ 라일락의 향기 - 김소월

라일락이 피는 밤  
내 마음도 그 향기에 취해  
서로 닿지 못하는 사랑을 꿈꾸며  
달빛을 바라본다.

그 향기가 나를 이끌고  
한 걸음씩 그대에게 다가가지만  
그대는 이미 멀리 떠나간 뒤다.

라일락의 향기는  
이젠 그대의 기억만을 품고  
나를 떠나보내고 있다.

 

◈ 라일락 꽃을 보며 - 정호승

라일락 꽃이 피면,  
내 마음에도 작은 빛이 일어난다.  
어린 시절의 기억처럼  
하얗고 보랏빛의 향기가  
내 마음을 어루만지며 다가온다.

하지만 그 꽃은 피어도  
절대로 오래가지 않는다.  
그 짧은 순간 속에서  
내가 사랑했던 모든 것들이  
서서히 사라져간다.

 

 

 

 

 

꽃을 주제로 한 시 - 장미

◈ 장미 - 나태주

장미는 피어나기 전에  
그 속에 가시를 품고 있다

하지만 그것이 바로  
사랑의 아름다움이 아닐까

사랑도 그렇다  
피어나기 전에  
많은 아픔을 겪어야  
진정한 아름다움이 된다

장미꽃은 그렇게  
가시를 품고  
더욱 향기롭고 아름답다

 

◈ 장미 - 윤동주

한 송이 장미가 피고 있다
잎이 짙은 빨간색의 장미

그러나 그것은
나의 사랑이 아니다
나의 사랑은 이미
붉은 장미꽃보다 더 아름다운 것

장미가 활짝 피었을 때
내가 속했던 순간을
단번에 떠올려본다
사랑은 이미 피고 있었고
고요한 밤이 오면
끝나버릴 것이다

 

◈ 장미의 가시 - 정호승

장미를 사랑한다고 말할 때  
그 가시를 피할 수 없다

장미는 그 가시가 있기 때문에  
그렇게 아름답고  
그렇게 아프다

사랑도 그렇다  
피어나는 순간  
가시가 되어  
우리 마음을 찔러도  
우리는 그 사랑을  
기꺼이 받아들인다

 

◈ 장미 - 김춘수

장미는 언제나  
한 송이, 한 송이  
조용히 피어나고,  
그 자체로 세상을 밝힌다

사랑은 그와 같아  
말없이 다가와  
조용히 내 마음을 물들인다  
그러나 그 사랑이  
흔들리면  
장미는 지고 말 것만 같다

그래도 나는  
그 장미를 사랑한다

 

 

 

 

 

꽃을 주제로 한 시 - 들꽃

 

◈ 흔들리며 피는 꽃 - 도종환

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
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
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
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
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

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
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
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
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
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

 

◈ 들풀 - 나태주

살아 있는 것들은  
대체로 외롭다.  
그래서 살아 있는 것들은  
더 서로 사랑하지 않으면 안 된다.

들풀도 외롭고  
나무도 외롭고  
하늘도 외롭고  
구름도 외롭고  
새들도 외롭다.

그러나 이 세상에  
살아 있는 것들보다  
더 아름다운 것은 없다.  

 

◈ 객지에서 - 박복영

벚꽃 잎이 흩날렸다
떨어지는 궤적은 받아 적을 수 없었고
꽃잎이 걷는 보폭은 무작정이었으나
균형은 순식간에 무너졌다
꽃잎이 떨어진 자리는 저쪽의 풍경을
끌어당기다 잠이 들었고
먼 곳에 목소리가 있다고 잠꼬대를 하기도 했다
막막한 어둠을 건너는 동안
쉿, 처음을 기억했으면 해.
속삭이듯 바람은 다시 몰려왔다
아직
꽃잎은 안부를 묻고 있을 것이나
꽃 진 자리는 견디는 중이다

 

◈ 풀꽃 - 나태주

풀꽃은 조용히 자라난다
누구에게도 방해받지 않으며
햇빛을 향해
작은 꽃을 피운다

그 모습이 아름답다
소박하지만
누구보다 아름답다

풀꽃은 말없이
하루하루를 살아간다
그 삶 속에
세상의 모든 아름다움이 담겨 있다

 

◈ 풀꽃 - 정호승

풀꽃은 항상 그 자리에 있다
누구도 모르게 자라고
누구도 모르게 지고

하지만 그 자리에 있을 때
풀꽃은 나에게 말을 건넨다
이 세상 모든 것이
가장 아름다울 때는
그 소박한 존재들 속에서

풀꽃은 내가 알지 못하는 사이에
그대와 나의 마음을 이어준다

 

◈ 풀꽃 - 고은

풀꽃은 아무 말 없이
그 자리에 있다

아무리 큰 꽃이
그 자리를 차지하려 해도
풀꽃은 고요히
자리를 지킨다

풀꽃은 그저
조용히 살아가며
세상의 아름다움을
작은 몸으로 품고 있다

 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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